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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03 11:18 조회1,7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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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축구회관] 이명수 기자 = 황희찬을 향한 벤투 감독의 신뢰는 굳건했다. 세계 최고 수준 무대로 옮겨 활약하는 만큼 대표팀에 유용한 자원이라는 뜻이었다.파워볼게임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오는 15일과 17일, 멕시코와 카타르를 상대로 친선경기를 치른다. 두 경기 모두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교에서 열린다.

A매치를 앞두고 벤투 감독이 소집명단을 발표했다. 손흥민을 비롯해 이강인, 황희찬 등 유럽파가 포함된 완전체가 출격한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단 한 번도 A매치가 치러지지 못한 상황에서 열리는 경기이기에 많은 축구팬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소집된 선수 중 이전과 비교했을 때 소속팀이 달라진 선수가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황희찬이다. 황희찬은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잘츠부르크를 떠나 라이프치히 유니폼을 입었다. 이적 첫 시즌, 황희찬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치며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희찬을 두고 벤투 감독은 “황희찬은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환경이 달라졌다. 세계 최고 수준 무대로 옮겨 활약하고 있다”면서 “라이프치히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리그에서 3위에 올랐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까지 올라갔던 팀에서 경쟁하다 보니 출전 기회는 줄었지만 분명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선수이다”고 밝혔다.



실제 라이프치히는 유럽에서 떠오르는 신흥 강호 중 한 팀이다. 챔피언스리그에 단골로 진출하고 있고, 현재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 도르트문트에 이어 3위에 올라있다. 황희찬은 유럽을 대표하는 강팀에서 자리를 다지고 있다. 나겔스만 감독이 직접 데리고 온 선수인 만큼 시간을 두며 적응 중이다.

이어 벤투 감독은 “모든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보여주는 활약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다. 소속팀 모습과 비교했을 때 대표팀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황희찬은 중앙이나 사이드에서나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어떤 포지션에 기용할지 이번에 훈련하면서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벤투 감독은 루빈 카잔으로 이적한 황인범도 칭찬했다. “황인범은 이미 능력이 있는 선수가 더 발전했다. MLS에 진출하기 전부터 이미 유럽에 갈 실력을 보여줬었다. 지금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축구에 대한 이해가 높고 박식한 선수이기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잘 이해하는 선수이다”고 설명했다.



사진 = 레드불 코리아, Getty Images,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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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골닷컴

현장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오늘 10일 애플 자체칩 탑재한 첫 PC 공개 관측

애플의 신제품 공개행사 초청장애플코리아 제공
애플이 오는 10일 올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는 신제품 공개행사를 개최한다. 어떤 제품을 공개하겠다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자체 개발 중앙처리장치(CPU)를 탑재한 첫번째 PC인 ‘맥’이 공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은 2일(현지시간) 글로벌 언론 매체에 ‘한가지 더’(one more thing)라는 제목의 초대장을 보냈다. ‘한가지 더’라는 표현은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가 애플 신제품 행사에서 마무리 발언 뒤 퇴장할 것처럼 하다가 다시 돌아서면서 종종 사용했던 말이다. 신제품이나 새로운 기능을 깜짝 공개하며 이같은 표현을 사용하곤 했었다.

초청장에는 오는 10일 오전 10시(미국 서부시간 기준)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 내 애플파크에서 ‘애플 스페셜 이벤트’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행사는 애플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지난 9월 15일에는 신작 애플워치와 아이패드를, 지난달 13일에는 처음으로 5세대(5G) 이동통신을 탑재한 아이폰12 시리즈를 출시했던 애플의 올해 마지막 신제품 공개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신제품 공개 행사를 통해 ‘아이폰12’ 시리즈를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고 있다.쿠퍼티노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행사에는 애플이 자체 개발한 CUP인 ‘애플 실리콘’이 탑재된 맥이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지난 6월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에서 연말 이전 애플 실리콘을 탑재한 신형 맥을 공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여태까지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에는 자체 개발 칩인 ‘A시리즈’ 칩을 탑재해왔지만 맥에서만큼은 14년가량 인텔의 CPU를 계속 탑재해왔다.

정보기술(IT) 매체 차이나타임즈에 따르면 이번 맥에 탑재되는 애플 실리콘의 명칭은 ‘A14X’다. 반도체 위탁생산 글로벌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에서 5나노 공정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알려졌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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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인근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대책마련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야권이 민주당의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것과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돼서 발생한 선거 비용에 대한 것에 대해 사과조차 안하고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이날 오전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들을 거울에 비춰봤으면 좋겠다"고 야당을 비판했다.

장 의원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 2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언급한 발언을 정면 반박한 것이기도 하다.

안 대표는 당시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때 "기어이 후보를 내겠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는 선거비용 838억원 전액을 민주당에서 내야만 한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안 대표는 또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박원순, 오거돈 두 사람의 성범죄에 대해 광화문광장에서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 의원은 인터뷰 당시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후보 공천과는 구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어찌됐건 시민의 선택권을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전임자에 대한 사죄와 후보 공천에 대한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민주당이 전당원 투표를 통해 내년 보궐선거 후보 참여 관련 당헌을 수정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당대표 위의 당헌이 있다"며 "당헌 또한 당원들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이번 투표는) 당대표께서 그 부분을 잘 가늠하시면서 당원들의 목소리를 들으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승준 기자 dn1114@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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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망명 독립운동가 김창숙의 회고록 그리고 아들 김환기와의 서신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김창숙.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중국옷을 입고 있었다. 임경석 제공


“네 아비는 병들어 죽고 말아 너의 성공을 보지 못할 것이 한스럽구나. 아아! 네 아비는 집이 있으면서도 집이 없고, 죽어도 돌아갈 곳이 없도다. 더구나 너는 아직 어려서 만리를 달려와 상면하기가 쉽지 않으니 그 얼마나 슬프냐. 하지만 요즘은 교통이 매우 신속해서 남한에서 북경까지 단 사흘밖에 걸리지 않으니, 네가 한번 와서 이 죽어가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지 않으련? 너는 이 정황을 이회 숙씨 및 문중 여러 어른들께 빠짐없이 말씀드리고 떠날 채비를 서두르도록 하여라.” 1

“죽어가는 아비를 위로해주지 않으련?”

아버지 김창숙이 어린 아들 김환기에게 보낸 편지의 일절이다.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던 1923년 5월16일에 쓴 편지였다. 국외 망명길에 오른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음력 5월이므로 더위가 시작되던 때였다. 양력으로는 6월29일이었다. 그해 여름, 김창숙은 건강 문제로 고생했다. 오래전부터 앓던 치질이 악화했다. 통증이 심해 걷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인용문 첫 문장에서 아비가 병들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비관하는 마음을 토로한 까닭이 바로 여기 있었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가난한 망명객 처지임에도 그랬다. 미국인 의사가 경영하는 협화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수술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해 가을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간헐적인 편지 왕래가 가능했다. 망명지 베이징과 경상북도 성주군의 고향 마을 사이에 말이다. 공식 우편제도를 통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경찰 수배를 받는 망명자 신분으로는 불가능했다. 아마 인편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에 따르면 김창숙은 1923년 4월, 5월, 8월에 각각 국내로 비밀리에 편지를 보냈다. 받는 사람은 아들과 문중의 믿을 만한 친척이었다. 그 반대 통로도 열려 있었다. 김창숙은 4월과 8월에 국내에서 밀송한 편지를 받았다. 두 사람의 문중 친척이 보낸 글월이었다. 4~9월 편지 다섯 통이 오간 것을 보면,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신 내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홀짝게임

아들 김환기는 15살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아버지 나이 서른에 처음 얻은 아들이었다. 늦게 얻은 귀한 자식이었다. 김환기는 10살 이후부터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자라야 했다. 고향 마을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에서 어린 두 동생과 함께 홀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다. 집안의 큰일과 교육에 관한 일은 가까이 사는 의성 김씨 문중의 ‘숙씨’(아버지와 같은 항렬의 친족)들에게 물었다. 소년 김환기는 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본식 근대 교육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황매산에 가서 이회(而晦) 숙씨 휘하에서 일을 따르”기로 했다.

황매산은 경상남도 합천군과 산청군의 경계에 있는 높이 1113m의 고봉으로서, 남쪽 기슭 만암 마을에 이회 숙씨가 거처했다. ‘이회’란 김황(金榥)의 자(字)였다. 나라가 망하자 깊은 산골로 이사해 유학 고전 연구에만 전념하는 유학자였다. 김창숙보다 나이는 17살 아래지만 의성 김씨 문중의 항렬로는 아저씨뻘이었다. 숙씨라고 일컫는 이유였다. 김황은 1919년 파리장서운동과 1927년 유림단 독립자금 모금 사건에 연루돼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반일지사였다.

김창숙은 고향에서 온 편지를 통해 알았다. 10대 중반의 맏아들이 근대 교육을 중단하고 유학 고전 연구의 길로 나아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아이 교육에 관한 것이므로 중대한 사안이었다. 하물며 유학자의 정체성을 가진 이로서야 말할 나위도 없었다. 아버지 김창숙은 답장 편지 속에 ‘과히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답했다. “네가 옛 성인의 학문에 오로지 전념하여 뛰어나게 일가견을 세워, 우리 집안을 번성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라고 의견을 써서 보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뜻을 담았다.

교육 위해 아들을 베이징으로 불러

그러나 김창숙의 속마음은 달랐다. 아들이 베이징에서 교육받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 편지에 “네가 한번 와서 이 죽어가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지 않으려는가”라는 문장이 있다. 이와 관련되는 말이었다. 처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김창숙은 전달에 쓴 편지에서도 “내가 죽기 전에 만나볼 수 있게 북경에 와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아마 1923년에 접어들면서부터 맏아들 환기를 베이징으로 불러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게 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김창숙은 베이징으로 오는 절차를 세심히 일러뒀다. 교통이 매우 신속하므로 경북 성주에서 베이징까지 단 사흘밖에 걸리지 않는다, 김황을 비롯한 문중 어른들에게 이 정황을 말씀드려야 한다, 길을 인도해줄 성인이 있어야 하므로 동행할 만한 이에게 편지를 드려서 의논하라, 서울에 사는 지인에게 주선을 부탁해놓았으므로 서울에 도착하거든 그 사람 댁 방문을 요한다, 일정이 정해지면 속히 편지를 보내라, 떠날 채비를 서둘러라 등등 자세하게 썼다.

“지난날 내희 숙씨께서 편지를 보내셨더구나. 말씀이 몹시 도리에 어긋나 미친 사람이 실성한 것 같아, 내가 이미 공박하고 절교를 알렸단다. 너와 이회 숙씨 및 여러 종친께서도 이 뜻을 아시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대략 전한다.”

편지 속에는 또 하나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었다. 의성 김씨 문중 가운데 내희(乃希) 숙씨를 경계하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내희’라는 자(字)로 불리는, 김창숙의 가까운 친족 김한상(金漢相)이 지난 4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서 도리에 어긋난 말을 했다고 한다. 김창숙은 미친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편지 속에 무슨 말이 담겼기에 이처럼 분노했을까.

전향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조선총독부가 경북 경찰부를 통해 망명자 김창숙에게 제안했다.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에 들어와 귀순한다면, 과거 ‘범행’을 모두 불문에 부치고 후대하겠다는 말이었다. 집을 고치고 논밭을 새로 사줘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내희 숙씨는 경북 경찰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향을 권유하는 편지를 베이징의 김창숙에게 보냈다. 메신저 역할만 하지 않았다. 총독부 당국이 관대한 처분을 내렸으니 이제 가정의 즐거움을 누리기 바란다고 권면했다.2

김창숙은 큰 분노를 느꼈다. “머리털이 빳빳해지고 간담이 흔들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가까운 친족으로서 유교 고전학에 관한 담론을 나누고, 대소사 문중 일을 협의하던 사이 아닌가? 실망감 때문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창숙은 바로 붓을 들고서 답장을 썼다. 절교 선언이었다. 전향 권유가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를 통렬히 논박하고, 앞으로 다시는 내왕하지 않겠노라고 단언했다. 그는 아들 환기에게도 사정을 전했다. “말씀이 몹시 도리에 어긋나 미친 사람이 실성한 것 같아, 내가 이미 공박하고 절교”했노라고 알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문중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김황에게 편지를 써서 자초지종을 알리고, 내희 숙씨가 더는 일족의 일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923년 베이징에서 김창숙이 맏아들 환기에게 보낸 비밀편지. <심산유고>(국사편찬위원회, 1973년) 수록.


친족의 전향 권유에 분노해 건강 잃어

심중의 고통을 이기기 어려웠던 김창숙은 술에 손댔다. 폐결핵 기운이 있어서 음주와 흡연을 삼간 지 수년이 지난 때인데도 그랬다. 가슴에 울화가 치밀어 오른 김창숙은 고량주 한 두름을 혼자 다 마시고 대취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깨어나니 저녁 무렵이었다. 옆 사람에게 물었더니 이미 이틀이나 지난 뒤였다고 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번뇌가 생길 것 같으면 큰 잔으로 술을 퍼마시는 습관이 들었다. 묵은 병이 다시 도졌다. 금주하라고 권하는 이가 있었지만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거듭된 폭음의 뒤끝은 건강 상실이었다. 만성 치질이 급격히 나빠졌다.

마침내 큰아들 환기가 베이징으로 건너왔다. 1925년 봄이었다. 베이징행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낸 지 1년10개월이나 됐을 때다. 환기는 벌써 17살이 되었다. 7년 만에 이뤄진 부자 상봉이었다. 김창숙은 아들이 근대 교육의 길로 나아가게끔 인도했다. 먼저 두 개의 언어를 배우게 했다. 중국어와 영어다. 베이징에서 학업을 쌓으려면 마땅히 중국어를 익혀야 하는데, 영어 공부를 시킨 점이 이채롭다. 망명지에서 겪고 목격한 국제적 감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 재편이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똑똑히 지켜본 결과였으리라.

김창숙은 아들의 어학 능력이 늘기를 기다렸다가, 때가 무르익자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가게 했다. 중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김창숙의 회고록에는 ‘북경중학’에서 수학하게 했다고 쓰여 있다.3 ‘북경중학’이 학교 이름을 뜻하는 고유명사인지, 아니면 베이징에 있는 중등교육기관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근대 정규 교육을 이수하게 했다.

제 아들만이 아니었다. 김창숙은 조선 청년들의 베이징 유학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1923년 현재 베이징에서 조선인 유학생 수는 600여 명이었다. 그중 중등학교와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200여 명이고, 무관학교에 적을 둔 사관생도는 70여 명이었다. 입학을 희망하는 조선 청년들은 해가 갈수록 늘었다. 그래서 1923년 9월17일 베이징에 거주하는 조선인 유력자 60여 명이 모여 유학생을 후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그 첫 자리에 김창숙의 이름이 거명된다. 그날 회의에서 입학 준비를 위한 강습소와 유학생들 단결을 위한 친목 클럽을 조직하기로 의결했다.4

그러나 큰아들 김환기의 베이징 시절은 길지 않았다. 1년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조선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질병 때문이었다고 한다. 회고록을 보자. 1926년 “7월에는 환기의 귀국을 명하였는데 그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고 적혀 있다.5 의문이 든다. 실제 병에 걸렸다면 국내보다도 도리어 베이징에서 더 잘 치료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유학·체류 경비를 뒷받침할 경제적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은 독립운동에 관련된 사명을 부여해 입국시켰을 수도 있다. 김창숙은 1925년 8월부터 1926년 5월까지 10개월 동안 국내에 비밀리에 잠입해 유림단 독립자금 모금운동에 종사한 바 있다. 그의 베이징 귀환 시점과 아들 김환기의 국내 입국 시점이 두 달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이어졌다.

갑자기 귀국한 아들의 비참한 죽음

김환기의 귀국 결정이 지혜롭지 않았음은 이후 사건 전개를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귀국 뒤 얼마 안 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됐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국내에서는 ‘유림단 독립운동자금 모금 사건’이 발각돼 검거 선풍이 일었다. 사건 주모자 김창숙의 아들이자, 중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김환기는 이 회오리바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환기는 혹독한 고문의 희생자가 됐다. 1927년 2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출옥했다. 19살 청년의 신체는 손쓸 여지도 없이 훼손됐다. 그는 치료 중에 1927년 12월20일 사망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김창숙의 마음은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만년에 작성한 그의 회고록에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차마 그 아픔을 되살려 적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참혹한 소식을 들은 뒤로 자신의 병이 더욱 깊어졌다고만 썼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참고 문헌

1. ‘아들 환기(換基)에게, 계해(1923) 5월 북경 의원에 있을 때’, <국역 심산유고>,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382~383쪽, 1979년.

2. 김창숙, ‘벽옹 73년 회상기’, <국역 심산유고>, 739~740쪽, 1979년.

3. ‘벽옹 73년 회상기’, 746쪽.

4. ‘북경 유학이 從此 편리’, <조선일보> 1923년 10월5일치.

5. ‘벽옹 73년 회상기’, 7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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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 낙연에서 '단호' 낙연으로 변속해"
"정치적 운명 걸고 책임 혼자 떠안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3일 열린 당 제1차 중앙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두고 "독배를 들었다"고 평가했다. 전(全) 당원 투표를 통해 정당의 헌법 격인 당헌을 개정,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한 결정한 이 대표의 단호한 결정을 치켜세운 셈이다.

박 전 대변인은 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의 길을 연 당헌개정은 전격적이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욕을 먹게 되어있는 회피하고 싶은 '독배'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이낙연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독배를 들었다"며 "당원에게 책임을 돌린 회피가 아니라, 대표가 직접 결단했고 당원의 동의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장 신중해야 할 문제를 가장 신속하게 처리하고 책임은 '정치적 운명'을 걸고 온몸으로 혼자 떠안았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정치 개혁 차원에서 규정한 '보궐선거 원인 제공 시 무공천' 당헌을 지난달 31일부터 이틀 동안 실시한 당원 투표를 통해 개정했다. 이를 두고 '셀프 면죄부'라면서 이 대표를 향한 비판이 쏟아지자 엄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변인은 올해 9월 이 대표로부터 당 홍보소통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올해 4월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충남 부여로 특화거리 앞에서 공주ㆍ부여ㆍ청양에 출마한 박수현 후보를 지원 유세하고 있다. 부여=연합뉴스


박 전 대변인은 사안마다 "엄중히 보고 있다"는 신중한 대답으로 '엄중 낙연'으로 불렸던 이 대표가 '단호 낙연'이 됐다고도 전했다. 박 전 대변인은 "이 대표의 리더십을 엄중 낙연이라고들 하는데, 신중함을 우유부단함으로 치환하기 위한 조어에 불과하다"며 "당 대표 이낙연은 확실히 다르다"며 "윤리감찰단을 출범 시켜 당의 기강을 세우고, 김홍걸·이상직·정정순 의원 문제를 신속하고 단호하게 처리했다"고 했다.실시간파워볼

또 "총리에서 당 대표로 역할에 맞게 '신중'에서 '단호'로 변속하는 기간이었다"며 "당 대표로서 이낙연의 엄중은 신중보다는 '신속'과 '단호'의 동의어"라고 주장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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